LIFE QUOTES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

미나1 2024. 8. 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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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봄부터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3월 여행 이후 급격하게 안 좋아진 건강 탓에 3개월을 내리 쉬었습니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그 결과 예전처럼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운동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해졌습니다. 때문에 일을 해보려 여기 저기 원서를 지원해봤지만, 취직은 고사하고 적당한 알바도 구하기 힘드네요.

아픈 3개월 동안 모아놓은 돈을 너무 많이 지출했기에 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마음처럼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언제까지 회사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프리랜서로 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라고 마음을 다잡고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분명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지만, 연은 순풍이 아닌 역풍에 난다는 말을 기억하며, 더욱 성장하기 위한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세계 2차대전의 영웅이자, 영국의 제 42대 총리, 윈스턴 처칠의 말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윈스턴 처칠은 생애 동안 영국의 총리를 2번 역임한 정치가이자 군인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명망있는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말버러 공작 1세 존 처칠의 후손이었으며 말버러 가문은 유명한 정치가를 대다수 배출한 엘리트 집안이었죠. 처칠은 육국사관학교에 진학하면서 여러 국가에 복무하기도 했고, 보수당의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하지만 처칠은 입대했을 때도, 다르다넬스 작전 실패로 해군장관을 사임하고 좌천되기도 했고, 보수당에선 볼드윈 총리와 마찰을 빚어 내각에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현재는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정치인, 윈스턴 처칠이 된 것은 놀랍습니다.

 

처칠은 해군장관으로 임명됐을 때부터 독일과의 전쟁을 예견했었습니다. 하지만 작전실패로 그는 해군장관 직위에서 사임을 해야 했고, 당에서는 그의 말을 번번히 무시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처칠은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이 발발하자 여론은 처칠의 공직 복귀를 강력하게 요구했고, 처칠은 그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제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어 낸 영웅이 됐죠.

 

처칠은 "연은 순풍이 아니라 역풍일 때 가장 높이 난다." 고 했습니다.

그가 엘리트 집안의 자제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사실, 순탄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의 생각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 영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힘든 시기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괴로운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냐에 따라 괴롭던 경험이 삶에게 주는 교훈도 다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지금은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처칠이 강조해서 말했던 것처럼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려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역경이라는 역풍 속에서 더욱 높이, 또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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