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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

by 미나1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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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름다움에서 시작한다.

사랑은 어디서 시작하는 걸까요?
외모? 혹은 성격이나 가치관? 그도 아니면 두 가지 모두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됐건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랑이 어디서 시작하는지는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 같은 데요. 여전히 화자가 되는 사랑이란 주제를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서 사랑에 대해 알아가고자 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신과 요정, 괴물을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리고 신을 비롯한 많은 캐릭터에게 감정이나 가치, 생물을 의인화 하는 경우가 많죠.
제우스는 하늘을, 헤라는 가정을, 포세이돈을 바다를 의미합니다. 거품 속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신인데요. 바로 이 아프로디테가 낳은 인물이, 사랑을 관장하는 신, 에로스 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로마 신화의 관계도를 보면, 과거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사랑은 아름다움에서 시작한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곧 아름다움이라 말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 역사를 훑어보면 아름다운 이들이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랑이 아름다움 속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모와 상관없이 호감이 가고, 매력을 느끼는 경우를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본적 있을 텐데요. 사랑이 곧 아름다움이라면 이러한 감정은 무엇일까요? 이 또한 사랑일까요?

에로스는 미의 여신이 잉태했지만, 그는 인간이었던 프시케와 결혼하며 사랑의 결실을 맺습니다. 프시케는 인간에서 반인반신으로 변신하는데요. 이때 프시케를 뜻하는 가치가 영혼과 호기심 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아름다움일지 몰라도 그 끝은 영혼을 충족해줄 무언가라고 그리스로마 신화가 말하는 것 같습니다.
프시케와 에로스 사이에서 볼룹타스(행복)가 탄생합니다.

사랑. 지극히 개인적이고 추상적인 감정인만큼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랑이건 그 사이에서 행복이 생길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사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름다움 또한 천재의 영역이다.

아름다움의 또다른 이야기를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 함께 얘기하고자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선 도리안이라는 남자가 나옵니다. 도리안 그레이는 외모가 빼어난 젊은 청년인데, 한 화가가 그의 초상을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도리안이라는 인물이 점점 변하게 됩니다. 초상화가 그려진 이후부터는 도리안은 늙지 않게 됩니다. 대신 도리안의 초상이 대신 늙게 되는 것이죠. 도리안은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든 자신의 외적인 것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자, 점점 도덕성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서 결국 도리안이라는 인물이 파멸하게 되는 데요. 때문에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작품만큼 '아름다움'에 대한 주제를 던지는 책도 없을 겁니다.
 

바로 이 책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헨리 워튼 경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름다움도 천재성의 한 형태라네. 실은 천재성을 능가하는 것이지. 설명조차 필요없으니까. 햇빛처럼, 봄날처럼, 혹은 우리가 달이라고 부르는 저 은빛 조개의 그림자처럼.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는 위대한 사실이지."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또 경계합니다. 때때로 천박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아름다움은 존재할 뿐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가치에 따라 다르게 해석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아름다움은 감각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감동시킨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어떤 것은 감동을 주기 위해 긴 시간과 설명이 필요하지만 아름다움은 그렇지 않지요. 그저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요동치고 위로받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아름다움자체가 예술의 일부이며 천재성의 한 형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리안 그레이는 잘생긴 청년의 모습을 살아갔음에도 결국엔 파멸하게 됩니다. 그의 초상화가 그의 모든 추함을 대신해준다고 해도 사람은 아름다움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던 도리안이지만 그는 결국 불행해졌으니까요. 아름다움으로는 그를 구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약한 인간을 파멸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그린 화가, 바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리안. 누구든 자네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말게. 사랑은 예술보다 훨씬 더 경이롭거든."

 
아름다움이라는 천재적인 예술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또 사랑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세 가지 어원들.

 아름다움의 어원에 대한 세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아름다움은 나답다를 의미를 가진 어원입니다.
15세기 <석보상절>에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나'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라는 뜻을 가진 의미로, 내가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정형돈의 제목없음TV>에서 언급되면서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두번째는 아름다움은 '아는 것이 아름답다' 라는 뜻을 가진 어원입니다.
'알음과 답다'의 형태로 보는 고유섭선생의 설에서 나온 뜻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으로,  '안다.'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 세상 본질을 앎으로써 더 경이로운 진리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집니다.
 
마지막 아름다움은 '한 아름'이라는 의미를 가진 어원입니다.
여기서 '아름'은 둘레를 나타내는 단위를 말합니다. 사람이 팔을 최대한 벌렸을 때 그 팔 길이가 되는 만큼의 단위인데요. 때문에 아름답다는 두 팔 한 가득 찬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흔히 알려진 어원은 아니며, 우리가 쓰는 아름답다와는 의미가 다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아름다움을 주제로 다양하게 이야기해봤습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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